
‘변강쇠’라는 이름을 들으면 대부분 비슷한 이미지를 떠올린다. 강한 정력, 익살스러운 캐릭터, 그리고 한때 큰 화제가 되었던 영화나 연극 속 인물 말이다. 그래서인지 변강쇠를 실제 역사 속 인물로 오해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나 역시 처음에는 막연히 “어딘가에 실존했던 사람이 전설처럼 남은 것이 아닐까?”라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관련 자료와 판소리 연구서를 찾아보니 결론은 명확했다. 변강쇠는 실존 인물이 아니라 조선 후기 민중문화가 만들어낸 대표적인 가상 인물이다.
흥미로운 점은 실존 인물이 아닌데도 수백 년이 지난 지금까지 이름이 살아남았다는 사실이다. 역사 속 실제 인물 중에도 잊힌 사람이 수없이 많은데, 왜 하필 변강쇠는 오늘날까지 기억되고 있을까.
이번 글에서는 변강쇠의 실존 여부를 확인하고, 그가 등장하는 <가루지기타령>이 단순한 외설적 이야기로만 볼 수 없는 이유를 함께 살펴보려고 한다.
변강쇠는 역사 기록에 존재하지 않는다
먼저 결론부터 말하면 변강쇠는 역사적 실존 인물이 아니다.
조선왕조실록이나 승정원일기 같은 공식 사료는 물론이고, 지방지나 인물 기록에서도 변강쇠라는 인물의 흔적은 발견되지 않는다. 학계 역시 변강쇠를 특정 실존 인물에 기반한 인물로 보지 않는다.
그는 판소리 작품인 <가루지기타령> 속에서 창조된 허구의 인물이다.
다만 여기서 한 가지 생각해볼 부분이 있다. 역사 속 인물이 아니라고 해서 역사적 가치까지 없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실제로 역사를 연구하는 학자들은 공식 기록뿐 아니라 민담, 설화, 판소리 같은 구전 문학도 중요한 연구 자료로 활용한다. 왕이나 양반이 남긴 기록만으로는 당시 서민들의 생각과 감정을 알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변강쇠는 실제 사람은 아니지만 조선 후기 민중들이 어떤 세상을 살았고 무엇을 답답해했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존재라고 볼 수 있다.
판소리 여섯 마당 중 가장 독특한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변강쇠가 등장하는 작품은 흔히 <변강쇠타령>이라고도 불리는 <가루지기타령>이다.
현재 전해지는 판소리 가운데서도 상당히 독특한 위치를 차지한다.
춘향가가 사랑 이야기라면, 심청가는 효를 이야기한다. 흥보가는 권선징악의 성격이 강하다. 그런데 가루지기타령은 분위기가 전혀 다르다.
작품 전체가 매우 현실적이고 거칠다.
등장인물들도 전형적인 영웅과는 거리가 멀다.
변강쇠는 힘은 세지만 게으르고 무책임하다. 옹녀 역시 당시 사회가 요구하던 이상적인 여성상과는 거리가 있다. 둘 다 사회 주변부에 위치한 인물들이다.
자료를 읽다 보니 오히려 이 점이 작품의 가장 큰 특징처럼 느껴졌다.
조선시대 문학 속 주인공들은 대체로 도덕적 기준을 충족하거나 최소한 독자의 동정을 얻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변강쇠와 옹녀는 그렇지 않다.
그들은 결점이 많고 욕망에 솔직하다.
어쩌면 그래서 당시 백성들이 더 친근하게 느꼈을지도 모른다.
장승을 훼손한 사건은 단순한 실수가 아니었다
가루지기타령에서 가장 유명한 장면은 변강쇠가 장승을 뽑아 장작으로 사용하는 대목이다.
오늘날 기준으로 보면 단순히 나무를 땔감으로 사용한 행동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당시 사람들에게 장승은 단순한 나무 조형물이 아니었다.
마을 입구에 세워진 장승은 수호신 역할을 했다.
재앙을 막고 마을 경계를 표시하며 공동체의 안녕을 기원하는 상징물이었다.
그런 장승을 뽑아 불태운다는 것은 단순한 재산 훼손이 아니라 공동체의 질서와 신앙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행위였다.
자료를 찾아보면서 개인적으로 가장 흥미로웠던 부분도 바로 여기였다.
변강쇠는 배고프고 추운 현실 앞에서 신성함이나 금기를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
생존이 우선이라는 태도를 보여준다.
어쩌면 이 장면은 조선 후기 민중들의 현실을 반영하는 것일 수도 있다.
먹고사는 것이 힘든 상황에서는 체면이나 규범보다 당장의 생활이 더 중요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변강쇠의 죽음은 단순한 권선징악이 아니다
장승을 훼손한 뒤 변강쇠는 이른바 ‘동티’를 맞게 된다.
전국의 장승들이 모여 벌을 내리고 결국 변강쇠는 온갖 병에 시달리다 죽는다.
겉으로만 보면 “나쁜 행동을 했으니 벌을 받았다”는 단순한 교훈 이야기처럼 보인다.
하지만 판소리 연구자들은 보다 복합적으로 해석한다.
당시 민중들은 현실 속 권력에 쉽게 맞설 수 없었다.
양반이나 관료를 직접 비판하는 것도 어려웠다.
그래서 풍자와 해학을 이용해 사회를 우회적으로 비판했다.
변강쇠가 장승을 통해 기존 질서에 도전하고 결국 비극을 맞는 과정은 단순한 도덕 교육이라기보다 현실 사회의 모순을 보여주는 장치로도 읽힌다.
개인적으로는 이 부분에서 조선 후기 민중문화의 수준이 생각보다 훨씬 높았다는 인상을 받았다.
단순히 웃기기 위한 이야기가 아니라 웃음 속에 현실 비판이 숨어 있기 때문이다.
옹녀라는 인물은 생각보다 훨씬 입체적이다
많은 사람들이 변강쇠만 기억하지만 사실 작품을 끝까지 읽어보면 옹녀 역시 매우 중요한 인물이다.
옹녀는 당시 사회가 규정한 여성상과 상당히 다르다.
그녀는 수동적으로 보호받는 존재가 아니다.
스스로 이동하고, 선택하고, 생존한다.
변강쇠가 죽은 뒤에도 이야기는 끝나지 않는다.
오히려 옹녀의 삶은 계속 이어진다.
최근 연구에서는 이러한 점을 근거로 옹녀를 조선 후기 여성의 욕망과 생존력을 상징하는 인물로 해석하기도 한다.
물론 현대적 관점으로만 해석하는 것은 조심해야 하지만, 적어도 당시 문학 작품 속 여성 캐릭터 가운데 상당히 독특한 위치를 차지하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왜 사람들은 아직도 변강쇠를 기억할까
실존 인물도 아닌 변강쇠가 지금까지 기억되는 이유는 단순히 자극적인 설정 때문만은 아니다.
그는 조선 후기 민중들의 욕망과 불만, 생명력, 현실 감각을 압축해서 보여주는 상징적인 인물이기 때문이다.
실제 역사 기록은 주로 권력을 가진 사람들의 목소리를 남긴다.
반면 판소리에는 이름 없는 백성들의 감정이 담겨 있다.
변강쇠는 그런 의미에서 역사책에는 등장하지 않지만 역사 속 사람들의 생각을 보여주는 또 다른 기록이라고 할 수 있다.
처음에는 단순히 “변강쇠는 실존 인물일까?”라는 궁금증에서 자료를 찾아보기 시작했지만, 정작 흥미로웠던 것은 실존 여부보다 그가 왜 만들어졌는가 하는 부분이었다.
실존 인물이 아니라는 사실은 비교적 간단한 답이다.
그러나 변강쇠라는 캐릭터가 수백 년 동안 살아남은 이유를 들여다보면 조선 후기 민중들의 삶과 문화, 그리고 웃음 속에 숨겨진 풍자를 함께 만날 수 있다.
그래서 변강쇠는 역사적 인물은 아니지만 역사 공부의 좋은 소재가 되는 인물이라고 생각한다.
참고문헌
- 신재효, 『판소리 사설집』
- 정병헌, 『판소리의 사회사』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변강쇠타령」
-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민족문화대백과
- 국립국악원 판소리 연구자료
- 한국고전종합DB, 「가루지기타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