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은 누구에게나 찾아오지만 우리는 평소 그것에 대해 거의 이야기하지 않는다. 장례식장이나 병원 중환자실처럼 특별한 공간이 아니면 죽음을 입 밖에 꺼내는 것조차 불편하게 느끼는 경우가 많다. 어쩌면 죽음은 아직 오지 않은 미래의 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죽음학 관련 자료를 읽다 보면 흥미로운 점이 하나 있다. 죽음을 연구하는 사람들은 의외로 “죽음을 준비하자”보다 “지금을 더 잘 살자”는 이야기를 많이 한다는 것이다.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교수 출신으로 웰다잉 교육에 힘써 온 정현채 교수 역시 비슷한 관점을 강조해 왔다.
처음에는 죽음을 준비한다는 말이 다소 무겁게 느껴졌다. 하지만 관련 강연과 자료를 찾아보면서 생각이 조금 달라졌다. 죽음을 준비하는 일은 마지막 순간만을 위한 작업이 아니라 현재의 삶을 정리하고 돌아보는 과정에 가깝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죽음을 외면하는 문화 속에서 웰다잉이 주목받는 이유
우리 사회는 빠르게 고령화되고 있다. 평균수명은 길어졌지만 많은 사람들이 노년기와 임종 과정을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충분히 배우지 못했다.
과거에는 가족 중심의 돌봄이 일반적이었지만 지금은 1인 가구 증가, 핵가족화, 고령 독거노인 증가 등으로 상황이 크게 달라졌다. 생애 마지막 시기를 어떻게 보낼 것인지 스스로 결정해야 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이런 변화 속에서 등장한 개념이 바로 웰다잉(Well-Dying)이다.
웰다잉은 단순히 “잘 죽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죽음에 대한 준비를 통해 삶의 마지막을 보다 존엄하게 맞이하고, 남은 시간을 의미 있게 살아가는 태도를 포함한다.
자료를 찾아보며 흥미로웠던 점은 웰다잉이 의료 분야만의 개념이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심리학, 사회복지학, 노인학, 종교학, 철학 등 다양한 분야에서 함께 연구되고 있었다. 그만큼 죽음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 전체가 고민해야 할 주제라는 의미일 것이다.
죽음을 공부하는 것이 오히려 삶을 정리하는 계기가 된다
정현채 교수의 강연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주제 가운데 하나는 죽음을 두려움의 대상으로만 바라보지 말자는 것이다.
물론 누구나 죽음을 두려워한다. 낯설고 경험해 보지 못한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죽음에 대해 생각하지 않는다고 해서 죽음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죽음을 의식하게 되면 현재의 삶을 돌아보게 된다.
내가 정말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무엇인지, 지금 하고 있는 일이 의미 있는지, 혹은 미뤄 두었던 관계 회복이 필요한 것은 아닌지 자연스럽게 질문하게 된다.
개인적으로 이 부분이 가장 현실적으로 다가왔다.
죽음학 서적을 읽다 보면 죽음 자체보다 삶의 우선순위에 관한 이야기가 훨씬 많이 나온다. 결국 사람들은 죽음이 두려운 것이 아니라 제대로 살아보지 못했다는 후회를 더 두려워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사전연명의료의향서는 생각보다 현실적인 준비다
웰다잉을 이야기할 때 빠지지 않는 것이 사전연명의료의향서다.
처음 이 용어를 접하면 다소 어렵게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내용은 생각보다 단순하다. 회복 가능성이 없는 임종 과정에서 연명의료 시행 여부에 대한 자신의 의사를 미리 기록해 두는 제도다.
우리나라에서는 「연명의료결정법」에 따라 관련 제도가 운영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가족에게 부담을 주고 싶지 않다고 말한다. 그러나 실제 상황이 되면 가족들은 어떤 결정을 내려야 하는지 몰라 큰 심리적 부담을 겪기도 한다.
이럴 때 본인의 의사가 명확하게 남아 있다면 가족들의 고민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자료를 찾아보면서 느낀 점은 사전연명의료의향서가 단순히 의료 행위에 대한 선택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것은 자신의 삶을 어떻게 마무리하고 싶은지에 대한 의사 표현에 더 가까워 보였다.
재산보다 중요한 것은 남겨진 말일 수도 있다
유언장이라고 하면 대부분 재산 상속을 먼저 떠올린다.
하지만 최근 웰다잉 교육에서는 법적 유언장뿐 아니라 삶의 기록을 남기는 작업도 중요하게 다뤄진다.
가족에게 전하고 싶은 이야기, 살아오며 느낀 점, 감사했던 사람들에 대한 마음 등을 글로 정리하는 것이다.
실제로 호스피스 관련 자료를 보면 많은 사람들이 생애 말기에 가장 많이 하는 이야기가 돈이나 성공이 아니라 관계에 대한 이야기라고 한다.
왜 그때 고맙다고 말하지 못했는지, 왜 더 자주 연락하지 않았는지, 왜 사소한 오해를 오래 끌고 갔는지를 후회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생각해 보면 이상한 일이다.
평생을 일하며 재산을 모으지만 마지막 순간에 떠올리는 것은 사람인 경우가 많다.
그래서 웰다잉 교육에서 편지 쓰기나 인생 회고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는 듯하다.
용서와 화해가 웰다잉 교육에서 중요하게 다뤄지는 이유
정현채 교수는 여러 강연에서 사랑, 감사, 미안함, 용서의 중요성을 이야기해 왔다.
이를 종교적 의미로 해석할 수도 있겠지만, 심리학적으로 접근해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다.
사람은 해결되지 않은 감정을 오래 품고 살아간다.
오랜 갈등이나 후회, 미안함은 생각보다 큰 스트레스로 남는다. 반대로 관계를 정리하고 마음을 표현한 사람들은 비교적 평온함을 경험하는 경우가 많다고 알려져 있다.
물론 현실에서는 모든 갈등이 완벽하게 해결되기 어렵다.
그러나 적어도 먼저 연락해 보거나, 마음속 원망을 조금 내려놓으려 노력하는 것만으로도 삶의 무게가 달라질 수 있다.
개인적으로 죽음학 자료를 읽으면서 가장 의외였던 부분도 이것이었다.
죽음을 준비하는 학문이라고 해서 장례나 임종에 대한 이야기만 많을 줄 알았는데, 실제로는 인간관계와 감정 정리에 관한 내용이 상당히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다.
좋은 죽음은 결국 좋은 삶과 연결된다
웰다잉을 공부하다 보면 결국 같은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좋은 죽음은 어느 날 갑자기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평소 어떤 관계를 맺고 살았는지, 어떤 가치관으로 살아왔는지, 무엇을 중요하게 생각했는지가 마지막 순간에도 이어진다.
그래서 웰다잉은 죽음을 위한 기술이 아니라 삶을 위한 태도라고 볼 수 있다.
죽음에 대한 이야기가 불편할 수는 있다. 그러나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주제라면 외면하기보다 차분히 이해해 보는 것도 의미가 있다.
이번에 정현채 교수의 강연과 여러 죽음학 자료를 함께 살펴보면서 느낀 것은 죽음을 생각하는 일이 삶을 우울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삶의 우선순위를 다시 점검하게 만든다는 점이었다.
언젠가 끝이 있다는 사실을 알기에 오늘의 시간과 사람들을 조금 더 소중하게 바라보게 되는 것 아닐까.
참고문헌
- 정현채, 『우리는 왜 죽음을 두려워할 필요 없는가』
- 정현채, 『삶이 의미를 잃기 전에』
- 국가생명윤리정책원 연명의료정보포털
- 보건복지부, 연명의료결정제도 안내 자료
- 한국호스피스완화의료학회 자료
- 한국죽음학회 연구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