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죽음 이후를 연구하는 의사가 있다는 사실이 흥미로웠다
죽음은 누구에게나 찾아오지만 정작 우리는 죽음 이후에 대해서는 거의 알지 못한다. 과학이 눈부시게 발전한 시대를 살고 있음에도 “사람은 죽으면 어떻게 되는가”라는 질문은 여전히 명확한 답을 얻지 못한 영역으로 남아 있다.
최근 죽음학 관련 자료를 찾아보다가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명예교수인 정현채 교수의 강연과 저서를 접하게 되었다. 의사이자 해부학 교수였던 그가 오랫동안 죽음과 근사체험(Near-Death Experience)을 연구해 왔다는 사실이 개인적으로 상당히 흥미로웠다.
보통 사후세계 이야기는 종교나 철학의 영역으로 분류되곤 한다. 그런데 정현채 교수는 실제 의료 현장에서 보고된 사례와 국내외 연구 자료를 바탕으로 죽음 이후의 의식에 대한 가능성을 이야기한다.
물론 현재 과학이 이를 완전히 증명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다만 “죽음 이후는 아무것도 없다”는 기존 관점에도 아직 설명되지 않는 부분이 있다는 점은 분명해 보인다.
근사체험은 세계 여러 나라에서 반복적으로 보고되고 있다
정현채 교수가 가장 중요하게 다루는 주제는 근사체험이다.
근사체험은 심정지나 중증 사고 등으로 사실상 사망 상태에 가까웠던 사람이 다시 회복된 뒤 보고하는 경험을 말한다.
흥미로운 점은 국가와 문화가 달라도 비슷한 내용이 반복된다는 것이다.
대표적으로 다음과 같은 경험이 자주 보고된다.
- 자신의 몸을 위에서 내려다보는 느낌
- 긴 터널을 통과하는 경험
- 강렬한 빛의 존재를 만나는 경험
- 이미 세상을 떠난 가족이나 지인을 만나는 경험
- 자신의 삶을 한순간에 되돌아보는 경험
- 설명하기 어려운 평온함과 안정감
자료를 찾아보면서 의외였던 점은 이러한 사례가 특정 종교권에서만 나타나는 현상이 아니라는 점이었다.
기독교 문화권, 불교 문화권, 종교가 없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비슷한 구조의 경험이 보고되고 있었다.
물론 이것만으로 사후세계를 입증할 수는 없다. 하지만 단순한 환각이라고 보기에도 설명이 쉽지 않은 부분이 있다는 점 때문에 지금도 연구가 계속되고 있다.
의학적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사례들이 논쟁을 만든다
근사체험 연구에서 자주 언급되는 사례 중 하나가 파멜라 레이놀즈 사건이다.
그녀는 뇌동맥류 수술 과정에서 체온을 크게 낮추고 뇌혈류를 중단하는 고난도 수술을 받았다.
이 과정에서 의료진은 뇌 활동을 최소화하는 처치를 시행했는데, 수술 후 그녀는 수술실 내부 상황과 의료진의 대화 일부를 기억했다고 주장했다.
정현채 교수는 이러한 사례를 의식이 반드시 뇌 안에서만 작동하는 것은 아닐 가능성을 보여주는 사례로 소개한다.
반면 일부 신경과학자들은 기억의 형성 시점이나 수술 과정에 대한 해석에 오류가 있을 수 있다고 지적한다.
즉, 이 사례는 현재도 완전한 결론이 내려진 것이 아니다.
개인적으로 자료를 정리하면서 느낀 점은 찬성 측과 반대 측 모두 나름의 논리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오히려 중요한 부분은 어느 한쪽을 무조건 믿는 것이 아니라 아직 과학이 충분히 설명하지 못하는 영역이 존재한다는 사실 자체가 아닐까 생각된다.
뇌가 의식을 만드는가, 의식을 전달하는가
정현채 교수의 강연에서 자주 등장하는 비유가 있다.
바로 “라디오와 전파”의 비유다.
우리가 라디오를 부순다고 해서 방송국의 전파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마찬가지로 뇌가 손상되었다고 해서 의식 자체가 완전히 소멸하는 것이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는 의식이 뇌에서 생성되는 것이 아니라 뇌를 통해 표현되는 현상일 수 있다는 가설로 연결된다.
현재 주류 신경과학은 일반적으로 의식을 뇌 활동의 결과로 본다.
그러나 아직도 의식이 정확히 어떻게 발생하는지 완전히 설명하지 못하고 있다.
생각해보면 스마트폰이나 컴퓨터의 작동 원리는 상당 부분 이해하고 있지만, 인간의 의식은 여전히 미스터리에 가까운 영역이다.
그래서 죽음학 연구가 단순히 사후세계 연구가 아니라 인간 의식 연구와도 연결된다는 점이 흥미롭게 느껴졌다.
양자역학은 죽음을 설명할 수 있는 열쇠가 될까
죽음학 분야에서 자주 언급되는 또 하나의 주제가 양자역학이다.
대표적으로 물리학자 로저 펜로즈와 마취과 의사 스튜어트 하메로프가 제안한 의식 이론이 있다.
이들은 뇌세포 내부의 미세소관이라는 구조에서 양자적 현상이 발생할 가능성을 제시했다.
일부 연구자들은 이 가설을 통해 의식의 본질을 설명하려고 시도하고 있다.
다만 여기서 주의할 점도 있다.
인터넷에서는 양자역학이 이미 영혼이나 사후세계를 증명한 것처럼 소개되는 경우가 있는데 사실은 그렇지 않다.
현재까지는 하나의 가설이며, 과학계 전체의 합의를 얻은 이론은 아니다.
자료를 읽으며 가장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과학이 반드시 모든 가능성을 부정하는 학문은 아니라는 점이었다.
오히려 새로운 현상이 발견되면 검증 가능한 방식으로 탐구하려고 노력한다.
죽음 연구 역시 그런 과정 중 하나라고 볼 수 있다.
임종 직전 나타나는 특별한 경험도 연구 대상이 되고 있다
정현채 교수는 말기 투사(Deathbed Vision) 현상에도 관심을 가져왔다.
이는 임종을 앞둔 사람들이 이미 세상을 떠난 가족이나 친척을 보았다고 말하는 현상을 의미한다.
호스피스 의료진이나 간병 경험자들의 증언을 살펴보면 이런 사례는 생각보다 자주 등장한다.
물론 의학적으로는 약물 효과나 뇌 기능 변화로 설명하려는 시도도 있다.
하지만 모든 사례를 하나의 원인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부분도 존재한다.
특히 일부 환자들은 의식이 매우 또렷한 상태에서 비슷한 경험을 이야기하는 경우가 있다.
이러한 현상이 실제 무엇인지는 아직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다만 죽음을 앞둔 사람들이 극심한 공포보다 오히려 평온함을 느끼는 경우가 많다는 점은 여러 연구에서도 공통적으로 언급된다.
죽음학이 말하는 핵심은 사후세계보다 현재의 삶일지도 모른다
정현채 교수의 강연을 여러 편 살펴보면서 느낀 점은 그가 단순히 사후세계를 증명하려는 데만 관심이 있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오히려 죽음을 이해할수록 현재의 삶을 바라보는 태도가 달라질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죽음을 외면하면 삶의 중요한 부분 역시 함께 외면하게 된다는 것이다.
실제로 호스피스 관련 자료를 읽어보면 많은 사람들이 인생 마지막 시기에 돈이나 지위보다 인간관계와 후회를 더 많이 이야기한다고 한다.
죽음학 연구가 중요한 이유도 여기에 있는 것 같다.
사후세계가 실제 존재하는지 여부와 별개로, 죽음을 생각해 보는 과정 자체가 삶을 다시 바라보게 만들기 때문이다.
아직 결론은 없지만 계속 연구할 가치가 있는 분야
정현채 교수가 소개하는 근사체험과 사후세계 연구는 분명 논쟁적인 주제다.
현재 과학은 죽음 이후 의식의 존재를 증명하지도 못했고 완전히 부정하지도 못했다.
다만 전 세계적으로 축적된 근사체험 사례와 임종 직전 경험, 의식 연구는 여전히 많은 질문을 남기고 있다.
자료를 정리하면서 느낀 것은 죽음학이 단순한 신비주의가 아니라 의학, 심리학, 철학, 물리학이 함께 만나는 독특한 연구 분야라는 점이었다.
앞으로 의식 연구가 더 발전한다면 지금은 설명하지 못하는 현상들에 대해서도 새로운 해석이 나올 수 있을 것이다.
적어도 현재 시점에서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죽음이 인간에게 남기는 질문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참고문헌
- 정현채, 『우리는 왜 죽음을 두려워할 필요 없는가』
- 정현채, 『죽음학 수업』
- Bruce Greyson, After: A Doctor Explores What Near-Death Experiences Reveal about Life and Beyond
- Sam Parnia, Erasing Death
- Raymond Moody, Life After Life
- 대한호스피스완화의료학회 자료
-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공개 강연 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