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에 관한 이야기는 대부분 무겁다. 그래서 사람들은 가능하면 그 주제를 피하려고 한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죽음을 연구하는 사람들은 오히려 삶을 더 깊이 이해하려고 노력한다.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명예교수인 정현채 교수도 그런 사람 가운데 한 명이다.
정현채 교수의 강연과 저서를 읽다 보면 반복해서 등장하는 개념이 있다. 바로 ‘라이프 리뷰(Life Review)’다. 우리말로는 흔히 ‘인생 파노라마’라고 번역된다.
영화나 드라마에서는 사람이 죽기 직전 자신의 인생이 한순간에 스쳐 지나가는 장면이 자주 등장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를 극적인 연출 정도로 생각한다. 그러나 정현채 교수는 이러한 현상이 실제 근사체험(Near-Death Experience) 사례에서 반복적으로 보고된다고 설명한다.
물론 여기서 중요한 점은 라이프 리뷰가 과학적으로 완전히 증명된 현상은 아니라는 것이다. 의학계와 과학계에서도 다양한 해석이 존재한다. 다만 여러 나라에서 보고된 근사체험 사례들을 살펴보면 상당히 비슷한 특징들이 반복된다는 점은 분명히 흥미로운 부분이다.
자료를 찾아보면서 개인적으로 인상적이었던 점은 종교와 문화가 다른 국가에서도 비슷한 경험담이 나온다는 사실이었다. 미국, 유럽, 아시아의 사례들을 살펴보면 세부적인 표현은 달라도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는 경험에 대한 설명은 의외로 닮아 있었다.

라이프 리뷰는 단순한 기억 회상 이상의 경험으로 설명된다
정현채 교수에 따르면 라이프 리뷰는 단순히 과거를 떠올리는 수준의 기억 재생과는 다르다.
근사체험자들의 증언을 보면 자신의 삶 전체가 짧은 순간 안에 압축되어 펼쳐지는 경험으로 묘사된다. 어린 시절의 기억부터 최근의 사건까지 동시에 존재하는 것처럼 느껴지며, 과거의 특정 장면들이 실제로 다시 일어나는 것처럼 생생하게 경험되기도 한다.
특히 많은 체험자들이 공통적으로 이야기하는 부분이 있다.
바로 자신을 제3자의 시선으로 바라본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과거에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었던 장면을 다시 보면서 당시 상대방이 느꼈던 감정까지 경험했다고 증언하는 사례들이 있다. 반대로 자신이 베푼 친절이 누군가에게 어떤 의미였는지를 알게 되었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정현채 교수는 이러한 증언들을 소개하며 라이프 리뷰가 단순한 회상이 아니라 일종의 입체적인 자기 성찰 과정처럼 보인다고 설명한다.
현재 뇌과학은 이 현상을 명확하게 설명하지 못하고 있다.
일부 연구자들은 산소 부족 상태에서 발생하는 뇌 활동 변화로 설명하려고 한다. 반면 근사체험 연구자들은 단순한 생리적 반응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부분이 있다고 주장한다.
어느 쪽이 정답인지는 아직 알 수 없다.
다만 라이프 리뷰라는 개념이 단순한 상상에서만 나온 이야기가 아니라 수많은 증언을 바탕으로 논의되고 있다는 사실은 분명해 보인다.
정현채 교수가 주목한 것은 죽음 이후보다 삶의 과정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근사체험 이야기를 들으면 자연스럽게 사후세계에 관심을 갖는다.
하지만 정현채 교수의 강연을 들어보면 의외로 초점은 죽음 이후가 아니라 현재의 삶에 맞춰져 있다.
그는 여러 차례 “죽음을 이해하면 삶이 달라진다”는 취지의 이야기를 해왔다.
실제로 라이프 리뷰 사례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내용은 사회적 성공이나 재산이 아니다.
오히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가 중심에 놓여 있다.
누군가를 위로했던 순간.
가족과 함께했던 시간.
친구에게 도움을 주었던 기억.
또는 자신도 잊고 있었던 작은 친절.
반대로 무심코 던진 말로 인해 상대방이 상처받았던 경험.
이러한 장면들이 더 중요하게 나타난다고 한다.
자료를 읽으면서 개인적으로 흥미로웠던 부분도 바로 여기였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돈, 직장, 승진, 성과 같은 문제에 많은 시간을 쏟는다. 물론 현실적으로 매우 중요한 문제들이다.
그러나 나이가 들어 자신의 삶을 돌아보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의외로 기억에 남는 것은 인간관계인 경우가 많다.
성과는 기록으로 남지만 감정은 기억으로 남는다는 말이 떠오르기도 했다.
‘인생의 성적표’라는 표현이 주는 의미
정현채 교수는 라이프 리뷰를 설명하면서 종종 ‘인생의 성적표’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다만 여기서 말하는 성적표는 우리가 학교에서 받는 성적표와는 전혀 다르다.
세상은 끊임없이 경쟁을 요구한다.
어떤 직장에 다니는지.
얼마나 많은 돈을 벌었는지.
어떤 집에 사는지.
어떤 차를 타는지.
우리는 이런 기준으로 사람을 평가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라이프 리뷰 사례에서는 그런 요소들이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오히려 인간관계와 감정이 중심에 놓인다.
이 부분은 상당히 생각할 거리를 제공한다.
만약 지금까지 살아온 인생을 스스로 평가해야 한다면 어떤 기준을 사용할까.
경제적 성취일까.
사회적 지위일까.
아니면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일까.
정답은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라이프 리뷰 사례들은 적어도 인간관계의 중요성을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노인돌봄 현장에서 만난 어르신들의 이야기가 떠오른다
노인맞춤돌봄서비스 업무를 하면서 다양한 어르신들을 만날 기회가 있었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분도 있었고 자녀와 연락이 끊긴 채 홀로 살아가는 분도 있었다.
반대로 넉넉한 형편은 아니지만 비교적 평온하게 생활하는 분들도 있었다.
그분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의외의 공통점이 발견된다.
삶의 마지막 시기를 이야기할 때 재산이나 직위보다 사람 이야기를 더 많이 한다는 점이다.
“그때 부모님께 좀 더 잘할 걸.”
“형제와 싸우지 말 걸.”
“자식들에게 너무 엄하게만 굴었던 것 같아.”
“그래도 이웃들과 잘 지낸 건 후회가 없어.”
이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라이프 리뷰라는 개념이 꼭 죽음 직전의 특별한 경험만은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어쩌면 사람은 나이가 들면서 자연스럽게 자신의 인생을 정리하고 평가하는 과정을 거치는지도 모른다.
실제로 어떤 어르신들은 수십 년 전 일을 어제 일처럼 이야기한다.
반면 과거의 성공담은 생각보다 짧게 이야기하는 경우가 많다.
그 모습들을 보면서 사람에게 오래 남는 것은 결국 관계의 기억일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죽음학을 공부하면서 오히려 삶을 더 생각하게 된다
처음 죽음학이라는 분야를 접했을 때는 다소 낯설었다.
죽음을 공부한다는 것이 어딘가 무겁고 어두운 느낌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료를 읽고 강연을 찾아볼수록 느낀 것은 죽음학이 죽음 자체를 연구하는 학문이 아니라 삶을 돌아보게 만드는 학문에 가깝다는 점이었다.
정현채 교수가 강조하는 웰다잉(Well-Dying) 역시 결국 웰빙(Well-Being)과 연결된다.
어떻게 죽을 것인가를 고민하는 과정이 결국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에 대한 질문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실제로 죽음을 가까이에서 경험한 사람들 가운데 삶의 가치관이 크게 바뀌었다고 이야기하는 사례들도 적지 않다.
더 많은 돈을 버는 것보다 가족과 시간을 보내는 것을 중요하게 여기게 되었다거나, 경쟁보다 관계를 우선하게 되었다는 이야기도 찾아볼 수 있다.
이러한 변화가 반드시 옳다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삶을 바라보는 시야를 넓혀주는 계기가 될 수는 있어 보인다.
라이프 리뷰가 사실인지보다 중요한 질문
라이프 리뷰는 여전히 논쟁의 대상이다.
과학적으로 완전히 증명된 것도 아니고 모든 사람이 경험하는 현상도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이 이야기에 관심을 갖는 이유는 단순한 호기심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라이프 리뷰가 던지는 질문이 매우 본질적이기 때문이다.
만약 오늘 하루가 내 인생의 마지막 장면으로 기록된다면 나는 어떤 모습으로 남고 싶을까.
지금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은 무엇일까.
나는 주변 사람들에게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고 있을까.
정현채 교수의 이야기가 많은 사람들에게 울림을 주는 이유도 여기에 있는 것 같다.
죽음을 이야기하지만 결국 삶을 묻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어쩌면 라이프 리뷰는 죽음 직전에만 일어나는 특별한 현상이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 끊임없이 작성하고 있는 인생의 기록일지도 모른다.
참고문헌
- 정현채, 『우리는 왜 죽음을 두려워할 필요 없는가』, 비아북
- 정현채, 『죽음학 수업』, 비아북
- Raymond Moody, 『Life After Life』
- Bruce Greyson, 『After』
- International Association for Near-Death Studies(IANDS) 자료
- 한국죽음학회 발표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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