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년 돌봄 현장에서 어르신들을 만나며 가장 자주 듣게 되는 말 중 하나가 있습니다.
“죽는 건 무섭지 않은데, 아픈 게 무서워.”
젊을 때는 죽음 자체를 막연하게 두려워하지만, 나이가 들수록 두려움의 대상은 조금 달라지는 것 같습니다. 죽음보다 통증, 의식 없는 연명치료, 가족에게 짐이 되는 상황을 더 걱정하는 분들이 많았습니다.
정말 고통 없는 임종은 가능할까.
죽음학 관련 자료와 완화의료 제도를 찾아보다 보니,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것과 실제 호스피스의 역할 사이에는 꽤 큰 차이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단순히 죽음을 기다리는 공간이라고 생각했던 호스피스는 생각보다 훨씬 적극적인 의료였습니다.
■ 호스피스는 치료를 포기하는 곳이 아니라 고통을 줄이는 의료였다
많은 사람들이 호스피스를 ‘더 이상 방법이 없을 때 가는 곳’ 정도로 이해합니다.
하지만 실제 완화의료의 목적은 다릅니다.
완치를 목표로 하는 치료가 어려운 상황에서 환자가 겪는 신체적 고통을 최대한 줄이고, 남은 시간을 자신답게 살아갈 수 있도록 돕는 것이 핵심입니다.
암 환자의 경우 극심한 통증으로 인해 잠을 자지 못하거나, 대화를 이어가기 어려울 정도의 고통을 겪기도 합니다. 호흡곤란, 구역감, 피로감, 불안과 우울 역시 흔하게 나타나는 증상입니다.
완화의료팀은 이러한 증상을 적극적으로 조절합니다.
통증 조절 약물 사용,
호흡곤란 완화,
영양 및 수면 관리,
심리 상담,
사회복지 지원,
영적 돌봄까지 포함됩니다.
자료를 읽으며 개인적으로 가장 흥미로웠던 부분은 완화의료가 단순히 진통제를 투여하는 의료가 아니라는 점이었습니다.
의사와 간호사뿐 아니라 사회복지사, 상담사, 자원봉사자 등이 함께 참여하는 다학제 접근이라는 사실은 생각보다 잘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결국 목표는 생명을 연장하는 것이 아니라 삶의 질을 유지하는 데 있습니다.
남은 시간이 6개월이든 6일이든, 그 시간을 어떻게 보낼 것인가에 대한 의료적 선택인 셈입니다.
■ 연명치료와 완화의료는 같은 개념이 아니다
죽음 관련 이야기를 하다 보면 연명치료 중단과 호스피스를 같은 의미로 받아들이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나 둘은 엄연히 다릅니다.
연명의료란 임종 과정에서 치료 효과 없이 생명 유지 기간만 연장하는 의료행위를 말합니다.
대표적으로 심폐소생술,
인공호흡기 착용,
혈액투석,
항암제 투여 등이 포함됩니다.
반면 완화의료는 치료를 중단하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통증 완화와 증상 조절이라는 측면에서는 매우 적극적인 의료 행위에 가깝습니다.
죽음학자 정현채 교수는 육체를 ‘렌터카’에 비유하기도 했습니다.
평생 사용하던 차를 언젠가는 반납해야 하듯, 인간의 몸도 영원하지 않다는 의미입니다.
물론 이 비유에 모두가 동의할 필요는 없습니다.
하지만 자료를 읽으며 느낀 점은 분명했습니다.
우리는 살아가는 방식에 대해서는 치열하게 고민하면서도 정작 삶의 마지막 순간을 어떻게 맞이할지에 대해서는 너무 늦게 생각한다는 점입니다.
죽음을 준비한다는 말이 죽음을 포기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오히려 자신이 원하는 의료 선택을 미리 고민하는 과정에 가깝다고 느껴졌습니다.
■ 사전연명의료의향서는 건강할 때 작성해야 의미가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연명의료결정법」에 따라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작성할 수 있습니다.
이는 향후 임종 과정에 접어들었을 때 본인이 원하지 않는 연명의료를 시행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미리 기록해 두는 제도입니다.
중요한 점은 건강하고 의사 표현이 가능한 상태에서 작성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막상 위급한 상황이 되면 환자 본인의 의사를 확인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면 결정은 대부분 가족에게 넘어갑니다.
문제는 가족들이 그 선택을 평생 짊어질 수도 있다는 점입니다.
“그때 치료를 중단하지 말았어야 했나.”
“조금 더 해볼 걸 그랬나.”
이런 죄책감은 사별 이후에도 오래 남는다고 합니다.
개인적으로는 이 제도가 죽음을 위한 준비라기보다 가족을 위한 배려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내 선택을 미리 알려두는 것이 남겨질 사람들의 혼란을 줄여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아직 젊다고 해서 꼭 먼 이야기만은 아닙니다.
예상치 못한 사고와 질병은 누구에게나 찾아올 수 있기 때문입니다.
■ 임종의 고통은 몸의 통증만으로 설명되지 않았다
죽음학 자료를 읽다 보면 반복해서 등장하는 표현이 있습니다.
바로 ‘전인적 고통(Total Pain)’입니다.
영국의 의사 시실리 손더스가 제시한 개념으로, 임종기 환자의 고통은 신체적 통증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경제적 걱정,
가족 갈등,
미안함,
후회,
외로움,
삶의 의미에 대한 질문까지 모두 고통의 일부가 됩니다.
현장에서 어르신들을 만나면서도 비슷한 모습을 종종 보았습니다.
몸보다 마음이 더 아프다고 말하는 분들이 있었습니다.
오래 연락하지 못한 자녀 이야기,
평생 풀지 못한 형제와의 갈등,
배우자를 먼저 떠나보낸 상실감.
생각해보면 인간은 관계 속에서 살아가기 때문에 마지막 순간에도 관계의 문제를 안고 있는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호스피스 병동에서는 음악치료나 미술치료, 원예활동 등을 통해 환자가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도록 돕기도 합니다.
누군가는 가족에게 편지를 쓰고,
누군가는 오래된 사진을 정리하며,
누군가는 미처 하지 못한 말을 전합니다.
죽음을 준비하는 과정이 단순히 의학적 절차만은 아니라는 점이 인상적이었습니다.
■ 남겨진 가족을 돌보는 것 역시 호스피스의 역할이다
자료를 정리하며 새롭게 알게 된 부분 중 하나는 호스피스가 가족 돌봄까지 포함한다는 점이었습니다.
환자의 죽음은 한 사람의 사건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가족에게는 또 다른 시작이 됩니다.
오랜 간병으로 인한 소진,
임종 당시의 충격,
상실감과 우울.
이러한 감정이 제대로 해소되지 않으면 병적인 애도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습니다.
그래서 일부 호스피스 기관에서는 사별 가족 상담과 모임을 운영하기도 합니다.
함께 기억을 나누고 슬픔을 표현하며 애도의 시간을 갖도록 돕는 것입니다.
돌아보면 죽음은 개인의 일이면서 동시에 공동체의 일이기도 합니다.
누군가의 마지막을 어떻게 돌보느냐는 결국 남겨진 사람들의 삶에도 영향을 미칩니다.
■ 죽음을 공부하는 일이 삶을 포기하는 일은 아니다
죽음학 관련 책을 읽기 전에는 저 역시 이런 주제가 다소 무겁게 느껴졌습니다.
괜히 우울해질 것 같았고, 아직 먼 이야기라고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자료를 찾아볼수록 생각이 조금 달라졌습니다.
죽음을 공부한다는 것은 죽음을 재촉하는 일이 아니라 삶의 우선순위를 점검하는 일에 가깝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는 어떤 치료를 원할까.
누구와 마지막 시간을 보내고 싶을까.
가족에게 어떤 말을 남기고 싶을까.
이런 질문은 죽음을 위한 질문이면서 동시에 오늘을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질문이기도 합니다.
고통 없는 임종이 100% 가능하다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의학에도 한계는 존재합니다.
다만 현대의 완화의료는 우리가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많은 고통을 줄일 수 있는 수준까지 발전해 왔습니다.
그리고 그 선택을 준비할 시간은 생각보다 일찍 찾아오는지도 모릅니다.
죽음을 이야기하는 일이 금기가 아닌 사회.
삶의 마지막을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사회.
어쩌면 호스피스와 완화의료는 죽음을 위한 제도가 아니라, 마지막까지 인간답게 살아가기 위한 제도인지도 모르겠습니다.
■ 참고문헌
- 정현채, 『우리는 왜 죽음을 두려워할 필요 없는가』
- 보건복지부, 「호스피스·완화의료 안내」
- 국가생명윤리정책원 연명의료정보처리시스템 자료
- 시실리 손더스(Cicely Saunders)의 전인적 고통(Total Pain) 개념 관련 자료
- 한국호스피스완화의료학회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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