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이에게 죽음을 이야기하는 일은 생각보다 어렵습니다.
부모라면 한 번쯤 이런 고민을 해봤을 것입니다.
“아직 어려서 모를 텐데.”
“괜히 무서워하면 어떡하지?”
“조금 더 크면 자연스럽게 알게 되지 않을까?”
솔직히 말하면 저 역시 비슷하게 생각했습니다. 아이에게 굳이 죽음을 이야기할 필요가 있을까 싶었습니다. 어른인 저도 죽음이라는 주제를 편하게 꺼내지 못하는데, 어린아이에게 그런 이야기를 하는 것이 오히려 불안만 키우는 건 아닐까 하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죽음학 관련 책과 강연 자료를 찾아보다 생각이 조금 달라졌습니다.
죽음을 알려주는 것이 아이를 힘들게 만드는 일이 아니라, 언젠가 누구나 겪게 될 상실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준비시키는 과정일 수도 있다는 이야기가 눈에 들어왔기 때문입니다.
특히 정현채 교수의 죽음학 강연을 접하면서 인상 깊었던 점은, 죽음을 배우는 목적이 죽음을 두려워하게 만드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삶을 더 깊이 이해하도록 돕는 데 있다는 설명이었습니다.
처음에는 낯설었습니다.
하지만 자료를 읽을수록 ‘우리는 왜 죽음 이야기만 유독 금기처럼 여길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아이들은 생각보다 훨씬 이른 시기에 죽음을 마주한다
어른들은 아이를 보호하고 싶어 합니다.
가능하면 슬픈 일을 늦게 알게 하고 싶고, 힘든 감정을 겪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도 있습니다.
하지만 현실 속 죽음은 생각보다 가까운 곳에 있습니다.
산책길에서 죽은 새를 발견하기도 하고, 어느 날 키우던 금붕어가 움직이지 않는 모습을 보기도 합니다. 오랫동안 함께 지내던 강아지나 고양이를 떠나보내는 아이들도 적지 않습니다.
때로는 조부모의 장례식에 참석하기도 합니다.
죽음은 어른들의 세계에서만 일어나는 특별한 사건이 아니라 아이들의 일상 속에서도 충분히 경험될 수 있는 일입니다.
문제는 그 순간 부모가 당황한다는 점입니다.
“뭐라고 설명해야 하지?”
“너무 솔직하게 말하면 상처받지 않을까?”
그래서 많은 부모들이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강아지가 멀리 여행 갔어.”
“금붕어가 잠든 거야.”
“하늘나라로 갔단다.”
물론 아이를 보호하려는 마음 때문입니다.
그런데 관련 사례를 읽다가 개인적으로 꽤 인상 깊었던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반려견이 죽은 뒤 부모가 아이에게 “잠들었어”라고 설명했는데, 이후 아이가 잠드는 것을 무서워하게 됐다는 내용이었습니다.
“나도 잠들면 다시 못 오는 거야?”
어른 입장에서는 위로의 표현이었지만, 아이는 그 말을 문자 그대로 받아들인 것입니다.
이 사례를 접하면서 저 역시 생각이 조금 달라졌습니다.
죽음을 숨기는 것이 반드시 아이를 보호하는 방법은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오히려 아이들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차분하게 설명해주는 편이 막연한 불안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 아이의 눈높이에 맞춘 설명이 오히려 불안을 줄여준다
아이들은 성장 단계에 따라 죽음을 이해하는 방식이 다르다고 합니다.
어린아이들은 죽음을 잠시 사라지는 상태 정도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고, 초등학교 저학년 무렵부터는 죽음이 되돌릴 수 없는 일이라는 사실을 조금씩 이해하기 시작한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물론 모든 아이가 똑같지는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정답 같은 설명을 외워서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아이의 질문에 맞춰 솔직하게 답해주는 태도인 것 같습니다.
“죽으면 몸이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아.”
“배가 고프거나 아픈 것도 없어.”
“우리는 그 사람을 기억할 수 있어.”
그리고 아이가 묻지 않은 내용을 억지로 길게 설명할 필요도 없다고 합니다.
생각해보면 아이들은 어른들보다 더 담담하게 질문합니다.
“왜 사람은 죽어?”
“엄마도 죽어?”
“나도 언젠가 죽어?”
처음 들으면 가슴이 철렁합니다.
하지만 죽음을 이해하려는 자연스러운 호기심일 수도 있습니다.
오히려 당황한 어른이 대화를 피하거나 화제를 돌리면 아이는 죽음을 ‘말하면 안 되는 무서운 이야기’로 받아들일 가능성이 있다고 합니다.
자료를 찾아보면서 흥미로웠던 점은, 죽음에 대해 열린 대화를 경험한 아이들이 그렇지 않은 아이들보다 죽음 자체에 대한 불안이 더 낮게 나타나는 경우가 있었다는 점이었습니다.
결국 중요한 것은 죽음을 얼마나 빨리 가르치느냐가 아니라 어떤 태도로 함께 이야기하느냐일지도 모르겠습니다.
■ 죽음교육은 삶을 소중히 여기게 하는 교육일까
죽음교육이라는 말을 들으면 무거운 분위기를 먼저 떠올리게 됩니다.
하지만 관련 책을 읽다 보면 의외로 자주 등장하는 단어가 있습니다.
바로 ‘삶’입니다.
정현채 교수 역시 죽음을 이해하는 과정은 결국 현재의 삶을 더 충실히 살아가기 위한 과정이라고 이야기합니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우리는 아이들에게 영어와 수학, 예체능 교육에는 많은 시간과 비용을 투자합니다.
학원 하나를 더 보내야 할지 고민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정작 누구나 살아가면서 겪게 될 이별이나 상실, 슬픔에 대해서는 제대로 이야기해본 적이 있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실 저부터도 그랬습니다.
가까운 사람의 죽음을 처음 경험했을 때 어떤 감정을 느끼는 것이 정상인지조차 몰랐습니다.
슬퍼해야 하는지, 울어야 하는지, 아무렇지 않은 내가 이상한 건 아닌지 혼란스러웠던 기억이 있습니다.
어쩌면 우리는 살아가는 방법은 열심히 배우면서도, 상실을 견디는 방법은 배울 기회를 거의 갖지 못했던 것은 아닐까 싶습니다.
물론 죽음교육이 모든 문제를 해결해주지는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적어도 아이가 언젠가 맞닥뜨릴 수 있는 슬픔 앞에서 “이런 감정을 느끼는 게 이상한 게 아니구나”라고 생각할 수 있게 해준다면 그것만으로도 의미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슬픔을 없애기보다 표현하도록 도와주는 것이 중요하다
아이가 슬퍼하는 모습을 보면 어른들은 빨리 괜찮아지길 바랍니다.
그래서 이런 말을 하게 됩니다.
“울지 마.”
“이제 잊어버리자.”
“괜찮아질 거야.”
물론 위로의 마음입니다.
하지만 슬픔은 서둘러 없앤다고 사라지는 감정이 아닌 경우가 많습니다.
오히려 아이에게는 자신의 감정을 인정받는 경험이 더 중요할 수 있습니다.
“많이 보고 싶구나.”
“속상했겠다.”
“슬픈 게 당연해.”
“우리 같이 이야기해볼까?”
이런 말은 아이에게 지금 느끼는 감정이 잘못된 것이 아니라는 메시지를 전달합니다.
죽음교육은 단순히 죽음을 설명하는 교육이 아니라 감정을 표현하는 법을 배우는 과정이기도 합니다.
돌봄 서비스의 제공하면서 어르신들을 만나보면 평생 슬픔을 표현하는 방법을 배우지 못한 채 살아오신 분들을 종종 만나게 됩니다.
“그땐 울면 안 되는 줄 알았지.”
담담하게 말씀하시지만, 오히려 오래된 상실이 마음속에 남아 있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감정을 표현하는 연습은 아이들에게만 필요한 것이 아니라 어른들에게도 필요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상실을 이해한 경험은 공감 능력으로 이어질 수 있다
죽음교육을 받은 아이라 해서 모두 공감 능력이 뛰어난 것은 아닐 것입니다.
다만 상실의 감정을 이해해본 경험은 다른 사람의 아픔을 바라보는 태도에 영향을 줄 수 있다고 합니다.
친구가 힘들어할 때 이유를 물어보고,
누군가 울고 있으면 함께 걱정하며,
생명을 함부로 대하지 않게 되는 경험들 말입니다.
요즘 학교폭력이나 생명 경시 문제를 접할 때면 결국 가장 부족한 것은 성적이 아니라 타인의 아픔을 상상하는 힘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생명의 유한함을 안다는 것은 단순히 죽음을 아는 것이 아니라 지금 내 앞에 있는 사람의 소중함을 조금 더 의식하는 일이 될 수도 있습니다.
물론 거창한 결론을 내릴 수는 없습니다.
다만 어린 시절의 작은 경험들이 아이의 시선을 조금씩 넓혀주는 역할을 할 수는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 부모가 시작할 수 있는 가장 작은 죽음교육
거창하게 준비할 필요는 없습니다.
산책하다 떨어진 낙엽을 보며 계절의 변화를 이야기해도 됩니다.
시든 꽃을 보며 자연의 순환을 설명할 수도 있습니다.
반려동물과 함께 살아가는 시간 역시 좋은 배움의 기회가 될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죽음을 지나치게 금기시하지 않는 태도인 것 같습니다.
아이가 질문하면 피하지 않고,
모른다면 함께 찾아보고,
슬프다면 충분히 슬퍼할 수 있도록 기다려주는 것.
어쩌면 죽음교육은 특별한 수업이 아니라 이런 작은 대화 속에서 시작되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글을 정리하기 전까지도 저는 아이들에게 굳이 죽음을 이야기해야 하나 하는 생각이 더 컸습니다.
그런데 자료를 찾아보고 사례를 읽어보면서 생각이 조금 바뀌었습니다.
죽음을 알려준다고 해서 삶이 어두워지는 것은 아닐 수 있다는 점, 그리고 상실을 외면하지 않는 힘 역시 살아가는 데 필요한 능력이라는 점을 다시 생각하게 됐습니다.
아마 정답은 없을 것입니다.
다만 언젠가 아이가 이별을 경험하게 되었을 때, 혼자 두려워하지 않도록 곁에서 함께 이야기해줄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시작이 아닐까 싶습니다.
참고문헌
- 정현채, 『죽음학 수업』
- 정현채, 『우리는 왜 죽음을 두려워할 필요 없는가』
- Elisabeth Kübler-Ross, 『인생 수업』
- Maria Nagy, 「The Child’s Theories Concerning Death」
- 한국죽음학회 자료집 및 관련 강연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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